노동자가 주도하는 위험성평가를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최진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73645

최근 내가 속한 금속노조 충남지부 노안위원회 자문단은 소속 지회들을 대상으로 노동안전보건활동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현장마다 진행되는 노동안전부장 및 담당 임원들과의 인터뷰에서는 성토대회라고 할만큼 노안활동가들의 구구절절한 고충들을 확인하고 있다.

고충의 단골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위험성평가’다. 특히, 금속노조는 2021년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를 핵심과제로 추진하면서 지속적으로 현장별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추진하는 위험성평가의 프로세스를 요약하자면 1) 노동자참여방안을 포함한 위험성평가 실행안을 산업안전보건위원회(아래 ‘산보위’)에서 합의하고 2) 현장노동자가 참여하는 실행위원회가 직접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금속노조가 추구하는 방식의 위험성평가가 진행되는 현장은 많지 않다. 현장 노안담당간부들은 위험성평가의 어려움을 어떻게 토로하고 있을까?

교육 부족

ad

아직 인터뷰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통계화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교육의 부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해당 문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각 지회 노안담당자들에 대한 교육의 문제다.

노조 차원에서 위험성평가 교육을 심도있게 진행했지만 경험이 전무한 담당자들에게는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부터 막막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간부나 담당자들만이 아니라 직접 위험성평가에 참여해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교육이다. 이는 또 다른 어려움으로 꼽힌 ‘활동시간’의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조합원 모두에게 위험성평가의 취지와 참여방법을 알리는 교육시간, 주도적으로 위험성평가에 참여해야 하는 실행위원들에게 조사방법과 실행방법을 교육할 시간, 그들이 활동할 시간모두를 보장받는 것은 이를 처음 시도하는 현장에서는 높은 벽일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실제 변하는 것은 없이 매년 반복되는 평가 때문에 현장의 관심이 낮고 참여가 조직되지 않는다는 고민도 있었고, 몇몇 현장에서는 관리감독자 지위에 있는 조합원들과의 갈등 문제를 토로하기도 했다. 상당수 현장에서 조반장들이 조합원 범위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이 위험성평가에 대해 반대하거나 노동조합에 불만을 제기하는 일도 있다는 것이다.

위험성평가 설계도의 필수요소

이처럼 쉽지 않은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완성된 모델을 제시하는 것 이상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필요하다. 수많은 실천과제들이 있겠지만 위험성평가에서 노동자가 주체가 되기 위한 기반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 위험성평가를 설계함에 있어 고려해야 할 지점이 무엇인지, 나아가 현실적인 대안들은 없는지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① 교육+α

금속노조 충남지부의 인터뷰에서도 드러나듯 충분한 교육을 보장받는 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여기에는 전체 조합원에 대한 교육, 담당 간부들에 대한 교육, 현장실행위원들에 대한 교육 등이 다층적으로 배치되고 실행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교육을 배치하고 현장노동자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것부터가 이미 사업의 일부이자 기획의 일부다. 경험이 없는 담당자들로서는 여기서부터 막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노동자가 참여하는 위험성평가의 전체적인 흐름과 핵심적인 차별점들을 체득하기 전까지는 이런 부분을 보완해 줄 장치가 필요하다.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사업의 기획단계에서 상급단체 또는 지역의 노안활동가들의 지원이나 자문을 받을 수도 있고, 지역 내에서 경험이 많은 사업장 활동가들의 도움을 받거나, 그런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가 진행되는 동안 견학과 체험을 통해 제대로 된 실전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② 활동시간의 확보

교육시간의 확보와 비슷한 맥락이지만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시간 이외에도 위험성평가를 위한 활동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임원이나 노안간부들은 전임자로서 혹은 기타 노사합의를 통해 위험성평가 기간 동안 활동시간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까지 포함하여 실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의 활동시간을 일정하게 보장하는 사업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위험성평가의 주체가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을 넘어 평가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위험성평가는 현장의 노동자들이 직접 위험성을 발견하고 평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현장을 조사할 시간, 동료 노동자들과 토론할 시간, 평가시트를 작성하고 개선안을 고민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 이러한 시간보장까지 포함하는 위험성평가 계획을 합의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관철시키기 어려운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취지를 살려 부서별 실행위원을 선임하고 안전교육시간, 노동조합 교육시간 등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 혹은 대의원 제도가 보장하는 활동시간이 있다면 대의원을 실행위원으로 선임하여 이를 활용하는 방안 등도 고민해볼 수 있다.

③ 노동자들을 위한 평가도구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안전보건공단의 표준을 따르거나 일부 변형하여 4M기법에 기반한 양식을 사용하여 위험성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4M기법은 사고원인분석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재해 예방을 위한 위험성평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또한 기법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를 활용한 위험성평가가 지나치게 안전사고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근골격계부담작업, 화학물질, 소음 등의 작업환경에 대해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크다는 점, 개선안을 결정하는데 있어 인적 요인이나 관리적 요인에만 집중하여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점 역시 위험성평가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4M기법에 기반한 위험성평가도구가 현장의 노동자들이 다루기에는 직관성이 매우 떨어져 노동자참여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등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장에 어울리면서도 현장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의 평가시트를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산업별, 직군별로 효과적이고 접근성 높은 평가도구들이 개발되고 보급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노동자들을 위한 평가도구의 도입은 위험성을 추정하는 단계만이 아니라 위험성을 발견하는 단계에서도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현장의 위험은 현장의 노동자가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때로는 그 익숙함으로 인해 알고 있는 위험요소라도 누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산재기록, 작업환경측정결과 등을 사전조사함으로서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며, 현장에 맞는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꼼꼼히 현장의 위험요소를 발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④ 독립성 보장과 개선안에 대한 검토

실태조사에서 언급되었던 관리감독자 조합원과 평조합원의 갈등은 위험성평가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흔하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비단 관리감독자 지위에 있는 조합원들과의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현장에서 지위, 나이, 성별에 의한 권력은 모든 곳에 존재하며 위험성평가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작업에 있어서는 실행위원들이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판단을 보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체 조합원에 대한 교육을 통해 위험성평가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하고 현장에서 평등한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주어야 한다.

위험성평가를 둘러싼 현장에서의 갈등은 개선방안의 선정과정에서 발생하기 쉬운데, 이는 대부분 근본적인 개선방안에 접근하지 못하고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함으로써 발생한다. 유해화학물질을 근본적으로 제거하는 대신 폭염 속의 노동자들에게 방독마스크 착용을 강조하면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당연하며, 유해위험설비를 개선하지 않고 점검항목과 서류작업만 잔뜩 늘어나면 관리감독자는 위험성평가를 저주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대안, 공학적인 대안을 우선시하는 위험성평가의 원칙을 충분히 교육하고 공유해야 한다. 또한 난해한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의하는 과정을 거치며 필요하다면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는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다양한 시도와 실험의 공유가 필요

법이 보장하는 것은 고작 위험성평가에 노동자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의견의 반영을 넘어 노동자가 주체가 되고 주도하는 위험성평가를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현장의 위험을 실효적으로 제거하고 재해를 방지하는 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주도하는 위험성평가의 모범적인 모델을 실현할 수 있는 현장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오히려 위험성평가 자체를 진행하지 않거나 회사의 안전관리자가 전담하는 현장, 혹은 외부 기관에 위탁하여 노동자들이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 현장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모범답안을 일률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현장의 현실에 맞는 다양한 방식의 접근이 더 많이 시도되어야 하고 그 결과들이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장 안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주도하는 위험성평가’를 노동안전부서만의 사업이 아니라 노조집행부 전체의 과제로 공유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대전제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운영위원이자 충남노동인권센터 새움터 대표이신 최진일님이 작성하였습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9월호에 연재한 글입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를 발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